한때 부자 자전거의 상징 리들리 자전거의 팀 !


펠로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니폼, 그 뒤에 숨겨진 자본의 힘
뚜르 드 프랑스 중계를 처음 보시는 분들이라도 절대 헷갈리지 않고 한눈에 찾을 수 있는 팀이 있습니다. 바로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이 선명하게 섞인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리들-트렉(Lidl-Trek)'입니다. 제가 몇 년 전 이 팀의 경기를 볼 때만 해도 커피 브랜드 스폰서 특유의 중후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최근 스폰서가 바뀌면서 펠로톤에서 가장 튀는 팀으로 변신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이들은 뚜르 드 프랑스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물러섬이 없는 '스테이지 헌터(구간 우승을 노리는 선수들)'들이 모인 강력한 팀입니다. 오늘은 거대 자전거 제조사와 대형 마트 자본이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는 리들-트렉의 역사와 전술을 해부해 보겠습니다.
커피 향을 지우고 마트의 실용성을 입다: 스폰서 변천사
이 팀의 역사는 자전거 동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미국의 거대 자전거 브랜드 '트렉(Trek)'을 중심으로 굴러갑니다. 2011년 룩셈부르크를 기반으로 한 '레오파드 트렉(Leopard Trek)'으로 창단한 이후, 라디오섁(RadioShack)과의 합병을 거쳐 오랫동안 '트렉 팩토리 레이싱', 그리고 이탈리아의 유명 커피 브랜드인 세가프레도(Segafredo)와 함께 '트렉-세가프레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절까지만 해도 튼튼한 중위권 팀이라는 인상이 강했지만, 2023년 거대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유럽 전역을 꽉 잡고 있는 독일의 초거대 슈퍼마켓 체인 '리들(Lidl)'이 메인 타이틀 스폰서로 합류한 것입니다.
자전거 판에서 슈퍼마켓 자본은 무시무시합니다. 앞서 2편에서 설명드린 팀 비스마의 전 스폰서 '윰보(Jumbo)' 역시 네덜란드의 슈퍼마켓이었죠. 리들의 막대한 자금력(Cash)이 수혈되자, 트렉은 곧바로 이적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며 공격적인 선수 영입을 시작했습니다. 스폰서의 교체가 어떻게 팀의 체급 자체를 단숨에 끌어올리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낭만과 뚝심의 아이콘들: 역대 주요 선수
과거 트렉 시절, 이 팀은 사이클링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낭만적인 선수들을 다수 보유했습니다.
- 파비안 칸첼라라(Fabian Cancellara): '스파르타쿠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타임트라이얼과 클래식 레이스의 황제입니다. 그가 펠로톤 맨 앞에서 묵직한 기어비로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아무도 쫓아가지 못했던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아직도 전설로 회자됩니다.
- 옌스 보이트(Jens Voigt): "Shut up, legs! (닥쳐, 내 다리야!)"라는 명언을 남긴 선수입니다. 고통을 참고 끊임없이 펠로톤을 뛰쳐나가는 브레이크어웨이(선두 그룹 형성)의 장인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트렉의 공격적인 팀 컬러를 정립한 인물입니다.
펠로톤의 무자비한 사냥꾼들: 현재 주요 선수
리들의 자본이 더해진 현재, 이 팀의 스쿼드는 하루짜리 클래식 레이스와 뚜르 드 프랑스 각 구간(스테이지) 우승에 최적화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합니다.
- 매즈 페더슨(Mads Pedersen): 덴마크 출신의 전 세계 챔피언으로, 현재 리들-트렉의 확실한 에이스입니다. 순수 평지 스프린터들은 넘지 못하는 험난한 언덕을 가뿐히 넘은 뒤, 지친 경쟁자들을 압도적인 파워로 찍어 누르는 거친 스프린트가 일품입니다.
- 줄리오 치코네(Giulio Ciccone) & 마티아스 스켈모세(Mattias Skjelmose): 치코네는 뚜르 드 프랑스 산악왕(폴카닷 저지)을 차지할 만큼 폭발력 있는 클라이머이며, 스켈모세는 팀의 미래를 책임질 다재다능한 차세대 리더입니다.
- 타오 게이건 하트(Tao Geoghegan Hart): 리들이 스폰서로 오면서 종합 우승을 노리기 위해 영입한 지로 디탈리아 우승자 출신입니다.

향후 전망과 한계, 그리고 핵심 관전 포인트
리들-트렉은 현재 매즈 페더슨을 필두로 한 스테이지 우승과 클래식 대회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팀입니다. 하지만 뚜르 드 프랑스를 보실 때 현실적인 한계도 명확히 아셔야 합니다.
이 팀은 아직 포가차르(UAE)나 빙에고르(비스마)처럼 3주간의 뚜르 드 프랑스 레이스 전체를 지배할 '초일류 종합 우승(GC) 컨텐더'가 부족합니다. 타오 게이건 하트를 영입하며 GC 팀으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지만, 부상 여파와 기존 빅 팀들의 견고한 산악 트레인을 깨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초보 시청자분들이라면 "왜 이 팀은 노란 옷(종합 우승자)을 입은 선수가 안 보이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애초에 현재 팀의 목표가 '종합 우승'보다는 '구간 우승'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뚜르 드 프랑스에서 리들-트렉을 지켜보는 가장 큰 재미는 이들의 '게릴라 전술'입니다.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은 코스가 조금만 거칠어지면 끊임없이 선두로 뛰쳐나가 판을 흔듭니다. 펠로톤이 지루하게 흘러갈 때쯤, 알록달록한 유니폼이 카메라 앞으로 튀어나온다면 "아, 이제부터 진짜 레이스가 시작되겠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핵심 요약
- 리들-트렉은 미국의 자전거 브랜드 '트렉'에 독일의 초거대 슈퍼마켓 '리들'의 자본이 결합하여 탄생한 막강한 화력의 팀입니다.
- 과거 파비안 칸첼라라, 옌스 보이트 등이 팀의 낭만적인 공격성을 다졌고, 현재는 매즈 페더슨이 그 공격적인 DNA를 이어받아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 뚜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보다는 특유의 거칠고 파괴적인 어택으로 각 구간(스테이지) 우승을 사냥하는 데 특화된 '보는 재미가 확실한' 팀입니다.
다음 7편에서는 자전거의 본고장 프랑스의 굳건한 자존심이자, 세대교체의 중심에 서 있는 전통의 명문 '그루파마-FDJ (Groupama-FDJ)' 팀의 역사와 눈물겨운 뚜르 드 프랑스 도전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경기 내내 안정적으로 점수를 지키며 종합 우승을 노리는 전략적인 팀과, 순위가 떨어지더라도 오늘 하루 무조건 우승하기 위해 앞뒤 재지 않고 공격하는 화끈한 팀 중 어느 쪽이 더 끌리시나요? 여러분의 취향을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