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 익숙한 핑크군단 !

엄숙한 펠로톤에 던져진 유쾌한 핑크빛 폭탄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중계를 처음 켜고 선수들이 무리 지어 달리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팀은 단연 'EF 에듀케이션-이지포스트(EF Education-EasyPost)'입니다. 전통과 규율을 중시하는 다소 엄숙한 자전거 레이스 세계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형광 핑크색으로 도배를 하고 나타나는 이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파격 그 자체입니다. 제가 처음 이 팀의 유니폼을 봤을 때는 "자전거 대회에 웬 펑크록 밴드가 출전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튀기만 하는 팀이 아닙니다. 이네오스나 비스마 같은 팀들이 숨 막히는 계산과 통제로 경기를 지배하려 할 때, 가장 창의적이고 변칙적인 공격으로 판을 뒤흔드는 진정한 펠로톤의 반란군입니다. 오늘은 자전거 레이스의 '보는 재미'를 완벽하게 책임지는 EF 에듀케이션-이지포스트의 스폰서 역사와 유쾌한 레이싱 철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의 기적과 글로벌 교육 기업의 구원: 스폰서 변천사
이 팀의 역사는 미국 사이클링의 자존심이자, 끊임없는 생존 투쟁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2000년대 후반 '슬립스트림 스포츠(Slipstream Sports)'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가민(Garmin), 캐논데일(Cannondale), 드라팍(Drapac) 등 다양한 스폰서를 거치며 성장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명품 자전거 브랜드인 '캐논데일'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팀의 강력한 성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팀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장 극적인 순간은 2017년에 찾아옵니다. 당시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팀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매니저 조나단 보터스는 팬들에게 직접 돈을 모금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합니다. 저 역시 당시 사이클링 커뮤니티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팀이 사라질까 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납니다. 팬들의 눈물겨운 모금 운동이 화제가 되자, 마침내 글로벌 어학 및 교육 기업인 'EF 에듀케이션 퍼스트(EF Education First)'가 메인 스폰서로 나서며 기적적으로 팀을 구원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물류 소프트웨어 기업인 '이지포스트(EasyPost)'가 공동 스폰서로 합류하며 재정적 안정을 찾았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핑크색을 메인 컬러로 삼고 영국의 유명 사이클링 의류 브랜드 '라파(Rapha)'와 협업하면서, 펠로톤에서 가장 옷 잘 입고 힙(Hip)한 팀으로 전 세계 자전거 동호인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낭만적인 클라이머들: 역대 주요 선수
과거 재정적으로 불안정했던 시절에도 이 팀은 항상 낭만적이고 끈질긴 선수들을 배출했습니다.
- 라이더 헤셰달(Ryder Hesjedal): 가민-바라쿠다 스폰서 시절이던 2012년, 캐나다인 최초로 지로 디탈리아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팀 역사상 최고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 댄 마틴(Dan Martin) & 리고베르토 우란(Rigoberto Urán): 댄 마틴은 특유의 거친 폼으로 산악 구간을 지배했고, 최근 은퇴를 선언한 우란은 뚜르 드 프랑스 종합 2위까지 올랐던 콜롬비아의 국민 영웅이자 팀의 오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올림픽 챔피언과 도망자들: 현재 주요 선수
현재 EF 에듀케이션-이지포스트의 스쿼드는 그 어떤 팀보다 예측 불가능하고 공격적입니다.
- 리차드 카라파즈(Richard Carapaz):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지로 디탈리아 우승자인 에콰도르의 산악 에이스입니다. 이네오스에서 이적한 후 부상으로 고전하기도 했지만, 컨디션이 올라온 날의 그는 뚜르 드 프랑스의 가장 가파른 오르막에서 포가차르나 빙에고르를 향해 겁 없이 어택을 날릴 수 있는 강력한 클라이머입니다.
- 벤 힐리(Ben Healy): 최근 펠로톤에서 가장 핫한 아일랜드의 젊은 선수입니다. 덥수룩한 장발을 휘날리며 결승점을 수십 킬로미터 앞두고 혼자 도망치는 '솔로 브레이크어웨이'의 장인으로, 무모해 보일 정도로 끝까지 페달을 밟는 투지가 일품입니다.
- 닐슨 파울레스(Neilson Powless) & 루이 코스타(Rui Costa): 파울레스는 산악왕 저지(폴카닷)를 입고 펠로톤을 누비는 미국의 차세대 희망이며, 루이 코스타는 전 세계 챔피언 출신으로 노련한 경기 운영을 보여줍니다.
대안 달력(Alternative Calendar) 전략과 관전 포인트
이 팀의 가장 독특한 점은 단순히 뚜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에만 목을 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폰서인 EF와 캐논데일의 마케팅 전략에 맞춰, 선수들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그래블(Gravel) 대회나 초장거리 어드벤처 레이스에도 출전합니다. 전통적인 펠로톤의 잣대에서 벗어나 '자전거 타는 순수한 즐거움과 모험'을 강조하는 것이죠.
뚜르 드 프랑스를 시청하실 때 이들의 최고 관전 포인트는 '스테이지 사냥'입니다. 이들은 잃을 것이 없다는 태도로 경기 초반부터 맹렬하게 브레이크어웨이(선두 그룹)에 합류합니다. 특히 벤 힐리나 카라파즈가 핑크색 유니폼을 입고 산악 구간에서 홀로 펠로톤과 시간 차를 벌리며 달아나는 모습은, 거대 자본 팀들의 계산적인 트레인 전술 속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짜릿한 사이다 같은 쾌감을 선사합니다.

- 핵심 요약
- EF 에듀케이션-이지포스트는 글로벌 교육 기업과 물류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파격적인 핑크색 유니폼과 라파(Rapha)와의 협업으로 가장 힙한 이미지를 구축한 미국 기반의 팀입니다.
- 과거 스폰서 난항으로 팀 해체 위기를 겪었으나, 팬들의 펀딩과 스폰서의 구원으로 살아남은 극적인 낭만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 리차드 카라파즈, 벤 힐리 등 공격적인 선수들을 앞세워 뚜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의 뻔한 공식보다는 화끈한 브레이크어웨이와 구간 우승을 노리는 펠로톤의 반란군입니다.
다음 12편에서는 철저한 데이터와 유스 시스템을 바탕으로 젊은 천재들을 끝없이 발굴해 내는 네덜란드의 시스템 자전거, '팀 dsm-피르메니히 포스트NL(Team dsm-firmenich PostNL)'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유니폼 디자인이나 팀의 고유한 컬러, 혹은 '멋'이 해당 팀을 응원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나요? 실력만 좋으면 상관없으신가요, 아니면 유니폼이 예뻐야 더 정이 가시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